어제는 회사 송년회가 있었다. 전사 송년회는 아니고(애시당초 그런 건 없는 회사다) 우리 본부 송년회에 사장님을 모시고 한 것이었는데, 작년도 그렇고 참 기분 더럽게 끝난 송년회였다.
우리 회사가 재계 몇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중견 규모는 되고, 내가 처음 입사했던 10여년 전 부터도 회사가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커피 같은 것만 해도 여직원이 부장님 커피 타드리는 문화(?) 따윈 없었고, 부장님이 막내(당시엔 나와 내 동기)를 주로 시키셨었다. 가끔 여직원들에게 시키실 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때였다. 외부 손님이 오셨다거나 우리 막내급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등등(실은 주로 내가 타는 커피는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능).
그런데 얼마전에 부임하신 이 사장님은 오실 때부터의 화려한 소문(회사내 임원, 부장님들이 전전 긍긍하며 사실이 아니길 바랬던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1년 내내 사장님한테 보고만 드리러 갔다 오면 부장님들 표정 안 좋으시고 회사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었는데, 작년 송년회에 이어 역시나 올해에도 또 그런 모습을 보고 말았다.
시작은 이랬다. 다들 회식자리에 앉아 사장님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척 들어 오시더니 몇몇 여직원(A차장과 신입 여직원)을 일부러 불러서는 가까이에 앉게 하신다. 그러고는 회식 내내 평소엔 사장님 뵐 기회가 없던 과,차장급 들이나 대리들이 사장님께 술 한잔 청 할 때에는 본체 만체 하시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시더니 여직원이 인사드리러 가면 10분이고 20분이고 앉혀 놓고 말씀이 많아 지신다. 그 여직원들 조차도 다른 부장님들이 눈치를 주고 자꾸 재촉해서 어쩔 수 없이 사장님한테 한번씩 술 따라 드리러 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구석에 앉은 몇몇이 내 옆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너무 티날 정도로 저러시는거 아니에요?
송년회라는게 뭔가? 예전엔 망년회라고도 했었지만 한해동안 있었던 좋지 않았던 일은 잊어버리고 서로 힘들었던 일 무사히 넘긴 것 감사하거나 잘한 일 칭찬도 해주며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대화 같은 건 끼어들 여지도 없고, 사장님 비위 맞추기 위해 여직원들을 그 주위에 포진시키는 부장님들이나 애초에 그런 걸 바라시는 사장님이나 참 우리회사지만 역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들으니 사장님이 여직원들 중에서도 혼자 사는 여직원이 누구인지 물어서는 그 둘만 따로 홍대앞의 와인바에 가자고 하셨단다. 이건 정말 너무 심한거 아닌가? 결국 그들 둘이 업무가 끝나지 않아 사무실로 다시 들어간다는 핑계로 간신히 모면하긴 했다는데, 그럼 내년 1월달에 다시 모이자고 하셨다니 정말 어이 상실이다. 결국 다들 2차를 어디로 가는지 관심을 끈채(다른 직원들이랑 가는 2차에는 사장님은 참석 안하셨다고 한다) 나와 몇몇은 발길을 사무실로 돌리며 참 더러운 기분으로 올해의 회사 송년회를 마감했다.
이런 것 조차 다 털어버릴 진짜 송년회를 조만간 함 따로 가져야겠다.